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 무타즈 (문단 편집) === 갈등과 죽음 === 하지만 군대에게 지급할 급료도 부족한 상태에서 군대 수뇌부와의 갈등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9세기 중반부터 관례적으로 시행되던 신임 칼리파의 군대에 대한 10개월치 급료 지급은 2개월치로 줄어들었다. 특히 내전을 거치며 이라크의 세금도 제대로 걷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무타즈는 바그다드 총독 에게 자급자족하게 하였고 도시의 혼란은 극심해졌다. 한편, 사마라 측과 협상한 무함마드 총독은 876년 11월에 사망하였고 그의 동생 우바이둘라가 직위를 계승하였데 무타즈는 타히르 조와 대립한 우바이둘라를 해임하고 또다른 동생 술라이만[* 우바이둘라의 동생]을 임명하였다. (869년) 튀르크 정권을 제어할만한 능력이 있던 우바이둘라 대신 지도력이 부족한 술라이만이 바그다드를 맡으며 무타즈는 스스로의 권력을 약화시킨 꼴이 되었다. 869년 들어 와시프의 아들인 살리흐가 튀르크 정권의 실권자로 부상하였고, 그는 조정 (디완)에서 재상 아흐마드 일당을 부패 혐의로 고발하였다. 이에 아흐마드가 반박하며 논쟁이 일어나던 찰나, 회의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살리흐의 경호원들이 난입하여 아흐마드와 그의 측근들을 체포해버렸다. (5월 19일) 살리흐는 그들을 고문하고 재산을 압류한 후에야 풀어주었다. 마침내 7월 13일, 살리흐는 급료 체불로 분노한 병사들을 이끌고 궁전 앞으로 가서 칼리파가 직접 나올 것을 요구하였다. 무타즈가 거부하자 살리흐의 부하들이 난입하여 그를 체포하였고 이틀 뒤 퇴위 문서에 서명하도록 강제되었다. 이후 감옥에 던져진 무타즈는 튀르크 병사들의 멸시와 괴롭힘을 당하다가 16일에 사망하였다. 알 마수디에 의하면 그는 화로 속에 던져져 죽었다고 한다. 사후 와시크의 아들이자 그의 사촌인 [[알 무흐타디]]가 칼리파로 추대되었다. [[분류:아바스 칼리파]][[분류:사마라 출신 인물]][[분류:847년 출생]][[분류:869년 사망]][[분류:폐위된 군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